가로등 하나 없이, 가냘픈 초승달에 의지해 밤 바닷가에 서 본적 있는가? 어디선가 불어온 겨울 바람 소리, 박자를 조금씩 바꾸며 귓전에 울리는 파도 소리, 이따끔 들리는 이름모를 새소리... 10년 전 겨울 바다, 눈앞에 펼쳐진 이름 모를 자갈밭,새벽 두 시의 초소... 서로다른 소리들이 어두운 수평선과 뒤섞이자, 어느덧 의식은 몽롱해지기 시작했다. "졸리냐" 팔뚝이 웬만한 사람의 종아리보다 굵은 박철곤 해병님의 낮고 울리는 목소리가 어둠을 가로질렀다. "아닙니다!" 가슴팍 계급장에 새겨진 검은 한줄만큼이나 절박한 내 목소리. 소총을 움켜쥔 방한장갑이 파르르 떨렸다. "아까 맞은데는 괜찮나?" 점호 후 이어진 선임들의 몽둥이질로 엉덩이엔 시퍼런 멍이 가득했지만 내색할 순 없었다. "괜찮습니다!" "괜찮긴..